이메일, 문자메시지, 숱한 SNS, 온라인 메신저, 채팅, 영상채팅 등 21세기는 소통의 수단이 흘러 넘친다. 그런데 온갖 매체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소통이 부재하는 시대라고 한탄하며 말이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문뜩 이런 생각을 해봤다. 소통은 도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자 귀를 기울일 때, 그만큼 나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 놓을 때, 판단과 비판을 하기 보다는 그저 듣고 공감해주고 위로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과 가장 친밀하게 소통을 하고 애정을 느낀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딱 떠오르는 것이 손편지를 쓰던 시절이었다.
원래 손편지라는 단어는 없다. 편지면 편지지 손편지가 뭐란 말인가?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일(mail)이란 단어를 들으면 이메일(email)을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기 때문에 편지도 굳이 손으로 쓰는 편지와 온라인으로 보내는 편지를 구분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수다 떠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일할 때, 공부할 때, TV 드라마를 볼 때는 입 꾹 다물고 그 것에만 집중하지만, 딱 그 시간만 벗어나면 끊임없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다떨기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진지한 이야기를 전하거나 마음 속에 진심을 털어 놓고 싶을 때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편지를 많이 애용하곤 했다. 멋적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내 마음을 꼭 전해야 했기에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은 편지를 쓴 사람은 ‘선생님, 부모님, 친구, 좋아하는 이성’ 이 순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떤 소통의 방법보다도 이 방법은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고 전하는 순간, 맨 나중에 대화를 하는 순간까지 긍정적인 효과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먼저 펜을 손에 쥐고 적어내려 가는 순간부터 살짝 긴장을 하고 조심하게 된다. 어떤 대중가요 제목에서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고 하지만, 막상 손편지를 쓸 때 연필로 쓰는 사람은 초등학생 꼬마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편지지와 잘 어울리고 글씨가 더욱 잘 써지는 펜을 골라서 쓰게 되는데, 펜의 가장 큰 단점은 잘못 썼을 때 지우면 너무 티가 팍팍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표현이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면서 조심조심 써야 한다. 결국 상대방이 이 글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일지 어떻게 써야 오해 없이 잘 전달하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며 정성들여 쓴 글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그대로 전달이 된다. 반면에 이메일을 사용하면 한 화면 가득히 쭉 썼다가도 맘에 안 들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해두고 다시 써도 되고 얼마든지 썼다 지웠다 해도 상관이 없으니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내려 가도 문제될 것이 없다. 편리하고 좋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정성이 손편지만큼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공들여 쓴 편지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 전달하는 것도 기술이다. 부모님께 전달하는 편지는 그래도 가장 적은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조차도 성공적으로 하려면 부모님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가능하다. 엄마에게 전달할 때는 화장대라는 가장 일반적인 공간이 있어서 어려울 것이 없지만, 아버지께 드리는 거라면 나의 아버지가 출근을 하시기 전 집안의 어떤 공간들을 거쳐서 구두를 신기까지 움직이시는지 알아야 한다. 내 기억에 난 이걸 알기 위해서 중학생 시절 아빠의 출근 시간을 유심히 관찰한 기억이 난다. 화장실, 아침식사가 차려진 식탁, 옷장, 지갑 등이 놓인 거실 한 쪽 작은 탁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발장. 그래서 내가 선택한 자리는 거실 한쪽 탁자였다. 지갑 아래 쪽에 밤에 쓴 편지를 슬쩍 밀어 넣는 방법.
그리고 편지의 대상이 친구나 연인일 경우는 더욱 세심히 관찰을 할 필요가 있다. 우편으로 보낼거라면 티 안나게 주소를 알아내는 기술도 필요하고, 직접 전해주려면 그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한 기억이 남는 때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선배에게 수줍게 전하던 편지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나름 순수했던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때부터는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기 까지 설레임 반, 걱정 반 하며 콩닥콩닥 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며 기다려야 한다. 부모님이 뭐라 말씀하실까,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친구는 나의 진심을 잘 알아차렸을까 기대하면서. 이 시간에 사람은 참 기분 좋은 긴장감을 경험하며 생동감 있는 일상을 살게 된다.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쉽게 나태해지지도 않고, 귀를 쫑긋 열고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둔 채 일상을 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을 테니 말이다.
두둥! 드디어 상대방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이 방법을 써서 난 한번도 부정적인 결과를 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 전달한 내 생각에 대해 두 분은 진지하게 곱씹고 또 생각하신 후 내 계획을 신뢰하고 지켜보겠다는 대답을 해주셨고, 내 제안에 동의하셨다. 수줍게 건넨 편지를 보며 어린 후배의 마음을 예쁘게 봐준 선배와 좋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고,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며, 선생님이 오히려 첫사랑과의 다리 역할을 해 주실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물론 가장 어렵고 멋적은 경우는 바로 선생님께 편지를 전하는 것인데, 이 부분만큼은 내가 분명히 스페셜 케이스였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과는 수 십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다지 중요한 이야깃거리도 아니었는데 선생님 댁의 주소를 알고 있으니 꼼지락 거리며 편지지 두 장 정도를 가득 채워서 보내면 선생님께서는 어김없이 답장을 해주셨다. 그러면 그 답장을 받는 즐거움에 또 편지를 쓰면서 계속 선생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내게 어떤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어본다면 난 어김없이 그 분을 얘기한다.
실제로 편지를 쓰는 시간은 짧게는 2~30분 정도이지만, 편지지를 고르는 순간부터 대답을 듣고 그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까지 내 마음과 머리에서는 계속 그 상대방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보다 훨씬 깊고 배려하는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손편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의 진실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편지지부터 골라보면 어떨까? 정성을 담아 쓴 편지를 봉투에 잘 넣어 담고 우표 한 장 사서 풀칠까지 잘 해 붙인 다음 빨간 우체통을 찾아보는 수고를 해보자. 이 작은 수고가 우리의 마음을 좀 더 따뜻하게 채워 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