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지만 그 불행하고 불쾌한 현장이 왜 재미있는지는 솔직히 지금도 이해는 안 된다. 대신 정말 즐거운 구경 하나 해볼까? 바로 꼬마 구경이다. 특히 작은 것에 감동하지 못하고,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력하게 산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더욱 권한다.
어느 날 경복궁 옆 돌담길을 향해 길을 건너다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전력질주를 해 달려오는 남자 꼬마아이를 보았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그 꼬마가 시내 한복판에서 왜 이리 뛸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같이 길을 건너던 행인 중에 그 아이의 아빠가 있었다. 아빠도 덩달아 뛰어가 아이를 안았더니 그 아이는 아빠의 품에 포옥 안겨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저 그 꼬마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빠가 있어서 행복해요.”라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 표정을 보니 하루 전날 여행가신 엄마에게 안 계셔서 심심하니 어서 오시라고 한 나의 닭살 문자가 생각나서 쿡 웃음이 나왔다.
유난히 꼬맹이들이 가득한 교회에서 욕심 많은 병아리를 본 기억이 난다. 여럿이 같이 합창을 하는데 한 여자아이가 유독 입을 크게 벌리면서 너무도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엄마 닭이 가져다 주는 모이를 더 많이 먹겠다고 욕심내며 부리를 크게 벌리는 병아리 같았다. 시종일관 그 열심을 잃지 않고 합창을 끝낸 그 아이는 무대에서 내려올 때도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그 순수한 최고의 노력이 지금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그저 열심만 있는 노력은 아름답지 않다. 깨끗하고 맑은 목표도 있고, 순수함도 있어야 그 노력이 돋보이고 아름다운 결실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그 병아리 같은 꼬마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었다.
작년 유럽여행 때였다.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아이가 부모님과 여행 중이었다. 기차에서 같은 칸에 앉았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질 것만 같은 큰 눈망울과 고유의 까만 피부가 너무 잘 어울리는 그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You are so cute.”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나와 엄마가 이상했는지 아이의 눈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나 겁먹었어요. 누구세요? 왜 날 자꾸 쳐다보세요?” 라는 표정으로 금새 울음을 터뜨릴만도 한데 아이는 꿋꿋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의 조그마한 몸은 아빠의 커다란 몸집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런 아이가 너무 귀여워 살짝 풋 웃어주고는 얼굴을 돌렸다. “아무리 낯설고 두려워도 나에겐 아빠가 있으니 겁나지 않아요” 라고 몸짓으로 말해주던 아이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지금 내 뒤에는 어떤 든든함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화창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날, 그저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있으면 좋으련만 꼬마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서 햇볕과 친구하며 놀기를 더 좋아한다. 또래의 꼬마아이들이 어울려 놀다 보니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리는게 너무 당연하다. 그 가운데 한 남자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그 아이의 누나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와서는 우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고, 동생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한 친구에게 참새 같은 입으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너 왜 우리 동생 때리니? 너 정말 나빠.” 라면서. 자기들 세계에서 같이 놀면서 룰을 깨버리고 치사하게 구는 친구를, 게다가 자기 동생까지 울게 한 그 친구에게 서슴없이 의사표현을 하는 그 아이가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언제나 저렇게 당당하고 정의로울 수 있을까? 꼬마 아가씨에게 한 수 배우고 싶어진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꼬마들은 작은 것에 기뻐하고 마음 아파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때묻지 않은 열정도, 아주 소소한 것에 감동하고 함박웃음을 아낌없이 날려주는 센스도 만점이다. 나를 포함해서 독자들의 삶이 무료하고 좋은 것을 봐도 그저 그럴 뿐 별다른 감흥이 없다면, 나쁜 것을 봐도 그 잔인함과 아픔이 마음 속 깊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꼬마 구경에 나서보라. 그 어떤 조언이나 자극보다도 효과적인 치료제가 될 것이다.
그 동안 모르고 지냈다면 동네 놀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재잘거림과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뒤섞인 유치원이 어디에 있는지 눈도장 찍으러 지금 당장 나서보라. 흐뭇한 꼬마구경에 잠자고 싶던 근육들이 움찔움찔 거리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