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가끔씩 내가 학창시절에 드라마만 조금 덜 봤어도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만 마시라 하면 속상하고, 담배를 오래 피워온 사람에게 담배의 해악을 이야기 하면서 끊으라고 권유해도 쉽게 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TV 드라마는 그렇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달콤한 유혹.
90년대만 해도 골라보는 TV가 있지도 않았고 DVD가 있지도 않던 때라 유일하게 내가 보고 싶은 걸 놓치지 않고 보려면 본방을 사수하거나 재방송 일정을 꿰고 있거나 혹은 집요하게 공테이프를 활용해서 비디오 녹화를 해서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라보는 TV로 몰아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었으나 얼마나 좋은가? 바빠서 못 보는 것도 허다하고, 일부러 TV를 피해서 책을 들고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는 습관을 만들어서 어릴 때처럼 TV 죽돌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으니 마음이 든든한 것도 사실이다.
일부러 TV를 피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가끔 몰아보기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셀프 코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이다. 물론 이 목적으로 볼 때는 사극 장르는 배제하고 현대물이 위주가 된다. 스토리에 빠져 박장대소를 하거나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보면서도 주인공들의 스타일을 유심히 살펴 본다. 나와 비슷한 스타일이거나 혹은 희망하는 스타일의 배우들을 보면서 헤어, 의상, 액세서리, 구두, 가방, 메이크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자꾸 보다 보면 나도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스타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하나씩 시도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이제는 미드의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국내에서만 접수되는 스타일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스타일들을 연구해볼 수 있다. 점점 서구화 되는 몸매의 소유자들이 늘어나면서 미드도 꽤 괜찮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굳이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를 참고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화는 길어야 두 시간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이 한정되어 있어서 참고하기에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는 연속성이 있어서 비슷한 장소,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때마다 메인 컨셉은 동일하나 조금씩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배우의 스타일을 관찰하는 동시에 상황에 따른 스타일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기에도 아주 좋다.
이때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연예인은 분명 나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미용실에 가서 송혜교의 귀여운 뱅스타일 사진을 보이고서는 “저 이 머리로 해주세요” 라고 했으나 내 앞머리는 그녀의 앞머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던 경험, 김사랑이 입은 옷이 너무 예뻐서 사고 싶은데 막상 찾아보니 엄두도 못 낼 비싼 명품이거나 34-24-36 사이즈나 되는 사람이 입어야만 스타일이 사는 옷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부터 내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즉, TV 드라마를 보고 코디가 된다는 것은 연예인 따라 하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스타일들을 발견하라는 의미이다.
배우들의 신체조건, 주요 활동 장소, 극 중 인물의 직업 등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제일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라. 무리해서 명품을 사고, 속상한 몸매와 얼굴에 상처받아 성형외과부터 찾으란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부담 없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도 해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선은 백화점 보다는 동대문 쇼핑몰, 수많은 보세가게 등을 방문하면서 직접 내 몸에 걸쳐 보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우리나라처럼 질 좋고 비교적 저렴하게 옷을 살 수 있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뭔가 하나 대유행이라도 됐다 하면 순식간에 동대문에 쫙 퍼지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현빈의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떠올려보라. 유행의 힘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당장 머리에 손을 대기가 망설여진다면 극도로 발달한 고데기(?)의 힘을 빌려보는건 어떨까? 메이크업에 자신이 없다면 백화점 매장에 당당히 들어가 나에게 맞는 메이크업을 한번 해달라고 하는 것도 좋다. 물론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나와도 상관없다. 그런 나를 향해 욕할 매장직원은 없다. 이것보다 조금 더 투자를 해보고 싶다면 갖고 있는 화장품을 전부 들고 가서 몇 번에 걸쳐 메이크업 교육을 받는 것도 괜찮다. 이건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대응방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엔 이런 교육을 해주는데도 참 많으니 정말 좋은 나라이다.
나의 변신 과정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조용히 작업을 한 후 멋지게 변신한 모습으로 나서보자. 어느 날 갑자기 알아보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 요새 스타일이 참 멋있어졌네.” 그때의 뿌듯함이라니…
처음엔 여러 연예인을 따라 하는 수준에서 시작하겠지만, 차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고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연예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광고, 기사들을 좀 더 관심있게 보게 된다.
나는 2~3년 전부터 마음에 드는 배우가 한 명 생겼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단정하면서 세련된 모습의 그녀가 좋아서 이후로는 유심히 그녀를 관찰한다. 물론 아무리 예쁘고 멋져도 불편하면 시도하지 않는 내 성격 탓에 100% 그녀를 따라 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드라마 보며 눈물을 쏟으며 스트레스도 풀고, 코디 공부도 하고, 실제로 좀 더 멋진 내 모습을 갖게 된다면 이야말로 일석삼조이지 않은가? 그래서 난 끝까지 주장하고 싶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결코 그저 단순한 시간낭비만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