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숱한 소식들을 접하고 산다. 옆집 엄친아가 학교 성적만 좋은 줄 알았더니 괜찮은 회사에도 입사했다더라, 우리 동네에 지하철 신노선이 들어설 예정이라 집값이 올라갈 것 같다더라, 지역별 학생들의 학습성취도 검사를 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이 몇 등을 했다더라, 잠잠하던 북한이 또 도발을 했다더라, 취임 때는 열렬한 지지를 받던 오바마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다더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갖가지 SNS가 이제는 트렌드라더라 등등.
이런 소식들 중 어떤 것들은 나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소식은 내 삶과는 전혀 무관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물론 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천차만별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인지 오히려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 다닐 때 국사와 세계사가 그렇게도 어렵고 외우기 힘든 과목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내 땅을 놓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 살지를 않았으니 얼마나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졌겠는가? 문득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세상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이건 쉽게 기억을 할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역사 속 큰 일이 벌어졌던 그날 당신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이 결혼하던 날이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신혼여행 길에 제주도에 발이 묶이는 특이한 경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난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을까? 지금은 휴일이 아니지만 식목일이 공휴일이던 그 당시 나는 태어났다. 나무 심는 날 태어나서 내 키가 크다고 가끔 친구들은 놀려댔는데 오늘따라 그날의 사건 사고들이 궁금해진다. 독자들도 나와 함께 자기가 태어난 날의 역사를 찾아보면 어떨까?
처음엔 쉽게 찾을 수 있겠지 하며 무작정 포털 검색 사이트에 “1981년 4월 5일에 일어난 사건”을 입력했는데 이건 너무 무식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입력만 하면 다 알려준다고 하는 똑똑한 인터넷에 강력한 지식인 검색까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잘 예상하지 못했던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그런지 호락호락 기사들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려보기로 마음을 먹고 신문사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과거 사건사고 찾아보기”로 다시 검색도 해봤다. 그런데 이때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디지털 라이브러리”라는 서비스이다. 역사 속 날짜에 발간되었던 신문 기사들이 보이길래 뿌듯하게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빙고!”
대학생들이 학생운동도 많이 하고, 군사정권이 한참 이어지고 있던 1980년대라 조금은 무서운 분위기의 기사들이 즐비하지 않을까 하고 내 생일을 입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생일날 아무런 신문도 발행되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잘못 눌렀나 싶어서 앞뒤 날짜로도 조회를 해봤는데 4월 4일도 4월 6일도 모두 신문이 정상적으로 발행이 되었다. 순간 내 생일엔 신문도 발행되지 못할 만큼 특별한 일이 있었나 생각했었는데, 이런 생각은 단 1분만에 싹 사라졌다. 대신 조금은 어이없는 발견 한가지. 이 디지털 라이브러리 서비스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기사들을 담아 보여주는 서비스인데, 이 신문들은 일요일, 공휴일에는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내 생일은 일요일이었고, 다른 빨간 날도 조회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 두기에는 살짝 섭섭하다면 다른 검색 시도를 해보라. 꼭 날짜를 고집하지 말고 “오늘의역사”라고 검색을 해보면 조선일보에서 운영하는 조선닷컴에서 “조선일보DB-오늘의역사”에 진입할 수가 있다. 들어가서 년월일 순으로 콕콕콕 생일을 입력하면 사건이 검색된다. 두둥. 이렇게 찾아보니 내가 태어난 그 날에 국내외 과학기술자종합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 출신의 재독일 과학자 5명이 내한을 했었다. 88 서울올림픽도 하기 전인데 북한 출신의 과학자가 한국에 왔다고 하니 기사거리가 될 만도 했을 법하다.
이 서비스는 한 두가지 역사만 알려준다면 바로 옆에 있는 “기사DB”를 통해 더 많은 일들을 찾을 수가 있다. 생일을 입력하고 기사 검색을 하면 종이신문 전면이 보이면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느껴질 것이다. 그 당시 나라 안팎 사정이 어땠을지, 혹시 혼란이 많았던 때면 나의 엄마가 나를 낳으실 때 괜히 고생을 하시지는 않았을지, 여러가지 궁금함이 솟아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내 생일 당일에 관한 기사가 신문 12면을 빼곡히 채웠다. 그 중에 인상적인 것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981년 4월 5일 일면을 장식한 기사 중에 그날이 식목일이자 예비군의 날이어서 예비군의 날 치사를 위해 전두환 전대통령이 모범 예비군들을 만나고, 교육 참여 등 정신무장을 적극 강조하였던 사실, 동구권에서 한국의 승인이 있어야지만 북한과 수교가 가능했다는 기사(이때 신문기사에서는 북한이 아니라 북괴로 표시함), 그리고 식목일 담화에서 남덕우 국무총리가 삼림조성을 위해 연 2억그루의 나무심기에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를 한 기사 등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사상 측면에서 흑백이 뚜렷한 기사들도 있었지만,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오팔, 비취 등의 보석원석 수입이 이날부터 허용되었다고 하는 흥미로운 기사도 있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기뻐할 소식이 이날 생겼다니 나도 모르게 그냥 뿌듯하다.
이런 기사를 보다가 좀 더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건들이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기사들을 훑어 보면 국사시간에 배웠던 대한민국 현대사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기도 하고, 그 당시에 지금 내 나이쯤 된 많은 청년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때를 살면서 선구자의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에 그때 아무 것도 모르고 응애응애 울며 태어난 내가 지금 이렇게 좋은 시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나보다 앞서서 살아간 인생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독자들이 60-70년대라면 현대사회로 넘어와 6.25전쟁 등 힘든 유년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40-50대 독자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시작하는 그때에 허리띠 졸라 매고 고생하시던 부모님과 함께 억척스럽게 살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며, 20~30대는 그런 선배들 덕분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에서 생계를 위협하는 어려움은 모르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스마트폰이 있다면 잠시 10분 정도 짬을 활용해서 내가 태어난 날의 일들을 찾아보라. 대수롭지않을 수도 있는 10분 동안 신기하고 엉뚱한 기사들 때문에 피식 웃을 수도 있고, 나라는 존재가 세상 역사가 흘러 가는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의 실존 인물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