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Code

깨저버린-룰을-과감히-받아들여라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더욱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만들고 감사하며 즐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충동적으로 하기 보다는 Plan-Do-See를 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창한 일을 하든 소소하게 놀거리를 찾든 계획하고 정리해서 실천하는데 익숙하다.


그런데 어찌 항상 정리하고 계획하는게 즐겁기만 하겠는가? 감정의 기복이 없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처럼 일률적일 수는 없다. 또한 해결해야 할 것들이 감당하기 어렵지 않을 만큼 적당히 있을 때는 Planning과 Organizing도 즐겁지만, 도를 지나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경우, 즐거운 마음으로 벌여 놓은 일들이 다른 일정의 영향으로 자꾸 지연되는 경우,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일 때 모든 것들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이런 상태가 몇 달 이상 지속이 되면 책상을 정리하는 것도, 친구들 만나는 약속을 정하는 것 조차도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정리하고 스케줄 조정을 해야할지 생각하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하강기류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순간이다.

 

이럴 땐 깨져버린 룰을 원상복구 하지 말고 과감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애써 정리하려고도 큰 그림을 미리 그려보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것부터 하라. 이것조차 귀찮고 버겁다면 우선은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두어도 좋다.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순간, 그 신호에 귀를 기울여라.

 

나는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잠을 충분히 많이 자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2024년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에 처음으로 달콤한 낮잠의 위력을 알았다. 도시 생활에만 익숙하다가 처음으로 하게 된 거제도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주말에 무얼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청한 잠이었다. 바깥에서는 잔잔한 남해바다가 고요히 흐르고 있고, 열어 놓은 기숙사 베란다 문으로 기분 좋은 바람과 햇살이 들어왔다. 푸근한 침대에 누워 아무런 생각 없이 대낮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깨고 나서 처음으로 개운함을 느꼈다. 이래서 낮잠을 자는구나.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몸 속에 에너지가 보충된 느낌이었다. 빨간 신호를 깜빡거리며 휘발유를 채워달라고 아우성거리는 자동차에 가득 주유를 하고 난 후 뿌듯한 기분과 비슷했다. 이 이후로 가끔 모든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일부러 이불 속을 파고든다. 할 일이고 뭐고 그냥 다 내버려 두고. 길어봤자 몇시간 정도 단잠을 자고 나면 그때는 내버려 둔 일도 다시 제대로 할 수 있을 만큼 충전이 된다.

 

너무 많은 일들이 몰려와서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있기 버겁다면 하루 이틀만이라도 그냥 그 일들을 모른 척해봐라. 어쩜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겠나 싶겠지만, 정말 개념이 없지 않고서야 분초를 다투는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당장 하지 않으면 지구가 무너져버릴 것같이 중요한 일만 해두고는 나 몰라라 해보자. 그래도 세상은 잘만 돌아갈 것이다. 해야 되는데, 끝내야 하는데 라고 초조해 하지만,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황만 하는 그 시간에 당신은 늙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노화방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을 통해서 위안을 얻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가지치기를 잘 해서 한 놈만 파라. 원래 같으면 꼬여 있는 실타래를 풀듯이 여러 개의 문제를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이라는 시간 속에 잘 펼쳐서 퍼즐을 맞추듯이 끼워 맞춰 마침내는 모두 해내고야 마는 기지를 발휘하겠지만,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치면서 이 룰은 이미 깨져버렸다. 그렇다면 굳이 깨진 룰을 다시 이어 붙이려 노력하지 말고 한가지만 생각하라. 깨진 룰을 원상복구 하는데 쏟을 노력을 가지고 한 가지 미션이라도 해결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방법임을 기억하라.

 

만약 선택한 그 한 가지 미션이 꽤 묵직한 비중으로 다가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라면 워밍업 차원에서 책상정리나 가방 속 소지품 정리라도 해보자. 이는 독자들의 뇌가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사전 공지를 주는 정도의 센스이다.

 

선척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영혼은 일의 순서가 바뀌거나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를 할 수 있고 그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겠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Planning의 달인, 질서를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일수록 이런 상황에 느끼는 스트레스가 크다. 일부러 깨진 룰도 새로운 룰처럼 받아들여 보라. 내 스타일에서 살짝 벗어날 때, 여유 가득한 신선함이 느껴질 것이다.

 

룰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 평생 동의하지 않고 살겠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몇 번쯤은 그렇게 살아보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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