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곳에 대형 마트가 즐비하다.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고 구분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쇼핑하기도 쉽고 친절하고 깔끔하고 모든 것이 한데 다 모여있어서 이용이 편리한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시식코너까지 있으니 한 두개 집어 먹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나도 편리하고 깔끔한 대형 마트를 참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여기에서는 마트가 아닌 시장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통 재래시장까지도 필요 없고, 그냥 동네 시장이면 족하다. 대형 마트의 위와 같은 장점이 없을 수는 있지만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하면 항상 떠오르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린 꼬마였을 때,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있던 내가 종종 없어져서 걱정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마다 한참을 찾다가 못 찾아서 걱정을 하고 있으면 조금 후에 어린 내가 쫄래쫄래 집으로 와서는 엄마에게 “엄마! 시장에는 딸기도 있고, 고등어도 있어요. XXX라고 써져 있는 것도 봤어요.” 라고 말하더란다. 어린 것이 친구들과 놀다가 지루하니까 겁도 없이 시장까지 가서는 휙~ 한 바퀴 구경을 하면서 좋아하는 먹거리도 보고, 온갖 군데 써져 있는 글씨들도 읽고 나서는 신이 나서 돌아와서는 자랑을 해댔다고 한다. 이런 과거 경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금도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흥분하는 것이 사실이다. 종목은 늘 먹을 것에 집중!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시장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가게마다 진열 방법도 다르고 주인 아줌마, 아저씨들의 스타일도 달라서 물건 하나를 사든 질문 하나를 하든 매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장보러 나오신 아줌마들 틈에 껴서 세상 물정 구경 한번 해볼까?
우리 동네 시장을 떠올려보면, 초입에 떡볶이 수레가 서넛이 모여 있다. 빨간 떡볶이가 제일 먼저 시선을 끌면 그 다음부터 하나씩 옆에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 뜨끈한 어묵 국물, 가끔씩 구미를 당기는 설탕과 케첩 바른 핫도그. 앗! 여기까지 이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겠다.
분식은 그냥 구경으로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과일가게들이 몰려 있다. 항상 계절별 대표 과일이 제일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게 나름의 법칙이다. 문득 봄이 오면 딸기 한 바구니 사러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돌아가는 길에 귤 한 봉지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안으로 옮긴다.
그 옆에는 떡집들이 몇 군데 나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나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시루떡과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인절미를 하나씩 사고서는 계산하는 동안에 널려 있는 꿀떡을 한 두개 입에 넣는다. 요런 맛이 마트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시장에서만 가능한 묘미라고나 할까? 한 팔에 호박시루떡 봉지를 끼우고 인절미는 하나씩 빼먹으면서 또 움직인다.
이제부터가 난관이다. 사실 채소도 생선도 고기도 제대로 모르고 먹는 것이 투성이다. 우선 생선가게가 눈에 띄여서 가판대를 들여다 보니 내 눈으로 식별 가능한 것은 오징어, 갈치, 가자미 정도. 이런 식별 기준은 자동차에 대해 관심 없는 여자들이 거리에 있는 차를 보면서 티코, 마티즈, 트럭, 버스, 택시 정도만 구분할 뿐, 자동차 회사 이름이나 차 이름을 보지 않고는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자동차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남자들이 이렇게 얘기를 한다. “어떻게 저걸 구분 못해?”
그래도 떳떳하게 이번 기회에 알리라 마음을 먹고 아주머니에게 질문을 한다. “아줌마, 고등어랑 삼치가 어떻게 달라요? 임연수라는 생선을 좋아하는데 어떤 게 임연수에요? 가오리랑 홍어가 다른 거에요?” 그러면 아주머니들의 대답은 십중팔구, “요즘 아가씨들 다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고 해보지를 않아서 아는 게 없네. 이게 고등어고 삼치는 조금 더 커. 임연수는 여기 줄무늬 있는 거고, 홍어가 가오리보다 더 크지. 홍어는 비싸서 별로 없어. 주로 가오리가 많아.” 이다. 뭔가 꾸지람이 섞인 말인데 그래도 끝까지 대꾸해주면서 설명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고맙기 그지없다. 이때 마지막으로 날려주는 당당한 나의 한마디, “감사합니다. 그래도 동태, 명태, 북어, 황태가 다 같은 거라는 건 알아요. 이거 동태 맞죠? 두 마리만 주세요.”
다음에는 꼭 기억해야지 다짐을 하고는 옆에 채소 가게로 가면 더 가관이다. 상추, 오이, 고추 이런 것들 말고 나물들이 수두룩하게 있는데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앗! 그러고 보니 내일이 보름이라 오늘이 나물 먹는 날이라고 했는데, 이런 날 시장가면 다들 바쁘다고 설명 잘 안 해주실 것 같다. 채소가게에서 질문을 하고 싶다면 보름이 낀 날은 피하도록 독자들에게 권한다.
이렇게 먹을 거리들을 보고 나면 왠지 배가 부른 느낌도 든다. 사실은 손에 든 인절미 떡 봉지 덕분이지만. 그러면 늘어놓고 파는 수 만가지 잡화들, 각종 약재, 방앗간, 수선집, 반찬가게 등을 여유 있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궁금한 약재가 있으면 어디에 좋은지도 물어보고, 신기한 잡화가 있으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물어보고, 수선집 가격은 어느 정도 하는지도 물어보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다음에 갑자기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엄마를 대신해 갈 수도 있지만, 그냥 심심풀이로 구경을 하고 작은 호기심에 발동을 걸어 소소한 즐거움을 찾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 바로 시장이다. 우아하게 카트를 밀면서 냉동고에 진열된 플라스틱 포장의 식료품을 집어 넣는 대신 아주머니의 손저울로 턱턱 집어 주시는 음식들을 받아 들고, 신용카드 결재만 믿고 필요 이상으로 대량 구매를 하는 대신 적당량만 사면서 장사하시는 분께 빳빳한 지폐를 손에 쥐어드리는 그런 경험을 한번 해보라. 돈을 쓰면서도 즐거울 것이다. 또한 삶의 지혜를 하나 더 배웠다는 기쁨도 함께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