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Code

과거로떠나는타임미선

 

몸을 과하게 움직이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든, 데이트를 하든, 그냥 가만히 카페에 앉아 책을 보든 어쨌든 집 밖으로 나가기를 즐겨 하는 사람도 가끔은 정말 꼼짝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옷을 챙겨 입고 신발을 뭘 신어야 할까 신경쓰는 것조차 귀찮은 날. 잠이 몰려오는 것도 아니고, 책도 읽기 싫은 그런 날.

 

책장 한 켠이나, 장롱 속 깊숙이 들어가 먼지가 툭툭 떨어지는 앨범들을 꺼내보라.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흑백 사진도, 막 들여온 컬러 사진도 모두 있을 때라 촌스러운 옛 모습을 더욱 촌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이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부모님 장롱 속에 들어가 있는 사진첩엔 부모님 연애시절부터 독자들의 아기적 모습이 담겼으니 필히 챙겨봐야 하고, 졸업앨범 속엔 사춘기적 감추고 싶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재미있으리라.

 

앨범들을 꺼내 왔다면 최대한 즐겁게 볼 수 있는 여건부터 세팅 해보라. 오랜만에 라디오가 듣고 싶으면 익숙한 주파수를 맞추고 DJ 목소리로 분위기를 가늠하라. 최파타의 최화정처럼 톡톡 튀는 목소리가 즐거울 수도 있고, 컬투의 익살스런 목소리로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으니 그날 감성지수에 코드를 맞춰 틀어놓으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라디오를 잘 안 들어 어색하다면 그냥 텔레비전 방송을 켜놓기만 해도 된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모두 지금은 메인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을 위한 Surrounding 효과만 있으면 된다. 사진첩을 넘기다 귀에 들려 오는 음악이 있으면 흥얼거리면 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들려오면 크게 웃으면 된다.

 

귀도 눈도 즐거울 준비가 됐는데 입이 심심하다. 입이 심심한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니, 주방에 돌아다니는 군것질거리가 있나 어슬렁거려보자. 어젯밤 먹다 남은 찐 고구마가 있을 수도 있고, 포장도 뜯지 않은 쿠키가 있다면 더더욱 기쁘겠지? 냉장고를 열면 빨간 딸기가 그 자태를 우아하게 뽐내고 있을 수도 있고,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오렌지주스도 있다. 전혀 조합이 안 맞는 간식들이라 해도 상관없다. 사진을 보며 주섬주섬 입에 가져갈 수 있는 주전부리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할 준비가 다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사진을 들여다 보자. 집집마다 구성이 다르겠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봐온 부모님이니 솔직히 두 분의 사랑감정, 연애감정을 우리가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반세피아 느낌의 사진 속에서 당시 유행이 고스란히 반영된 멋진(?) 옷을 입고 곳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부모님의 미소를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 연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순간 나만 연애할 줄 아는게 아니었구나, 저 두 분은 원래부터 부모님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한 아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바로 나와 독자들이다. 도무지 그 자그마한 아이가 이렇게 키가 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정말 작아서 엄마 품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다. 나도 나의 아이를 낳으면 꼼꼼하게 사진 기록을 잘 남겨야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가져보기도 한다. 혹시 지금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는가? 아기 때의 사랑스럽고 깜찍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얼굴을 만들어온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라. 그 해맑은 얼굴에 수심과 불평과 주름이 가득해졌다면 절반 이상은 본인의 책임이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 단 한 번 뿐인 내 인생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아기적 천진난만한 표정을 되찾으려 노력해보라.

 

돌도 채 되지 않아 가족과 덕수궁 소풍에 나서 샛노란 옷을 입고 혼자 열심히 뛰어다니는 내 사진이 나는 제일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든다. 두어 살 쯤은 되어 보이는 꼬맹이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은 귀에 걸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돌도 안 되어서 걷기 시작하길래 데리고 나갔더니 그렇게 뛰어다녔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더욱 호기심이 많았나 보다. 이렇게 어린 시절 모습을 보다 보면 잊고 있었던 독자들의 본성도 알 수 있다. 주변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돌아다니는 아이, 혼자 책을 보거나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 엄마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등 사진 속의 나를 통해 내재되어 있는 창의력, 집중력, 사교성, 내외향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무심결에 넘기던 사진첩 속에서 이런 소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뭔가 하나 덤으로 얻는 기분이 들 것이다.


가족사진을 큭큭 거리며 봤다면, 학창시절 나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더듬어 보자. 앳된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우리 아직 어려요.” 라는 외치는 듯, 웃음 터지는 유치함이 팍팍 묻어 나오는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춘기에 접어든 데다 다 똑 같은 교복에 거의 비슷한 스타일의 단발머리를 한 학생들에게서 제법 의젓함이 풍겨 나오는 중학교 졸업앨범. 어른 흉내라도 내듯 어딘가 꾸민듯한 그래도 아직은 어린 피부를 감출 수는 없는 고등학교 졸업앨범. 볼 때마다 우스꽝스러운데 이 맛에 또 보게 되는 것 같다.

 

손에 사진의 감촉이 느껴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우리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 미련 등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 주의할 것은 사진을 매개로 타임머신 여행을 하는 우리의 의도는 과거를 향한 회한이 아님을 명심하라.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기 보다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를 항상 꿈꾸고, 현재와 과거를 통해 좋은 것은 배우고, 안 좋은 것은 과감하게 빨리 버린다.

 

눈이 즐거운가? 뇌에 긴장이 풀렸는가? 입 가에 간식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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