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Code

동물원-혼자기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경험이다. 소나기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던 적막한 어느 날 오후. 집에서 가까운 동물원을 슬쩍 혼자 거닐었던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으나 심란한 일이 있었거나 혹은 고민이 많았던가 보다. 비 오는 날이니 당연히 동물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매표소의 담당자는 이 비 오는 날 동물원을 방문하는 이유가 궁금한 눈치다.

 

조용하게 동물원을 거닐 때 동물들의 표정은 한적함이 반갑다는 식이다. 비를 피해 한 쪽 구석에 몰려 있거나 지붕 아래 자리를 잡고 여유를 부린다. 하지만 모처럼의 피로한 공연을 피해도 좋다는 식의 여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는 손님이자 동시에 방해꾼이다. 손님도 방해꾼도 없는 그 한적함을 오래간만에 누리는 듯 하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의 모습이 아닌 홍차 한 잔을 마시는 비 오는 오후에 손님 한 명을 받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본다. 숨겨진 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나 역시 평화를 맛 본다. 마치 동물 하나 하나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처럼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가 있다. 2006년에 발간된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라는 책에 있는 글이다.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원숭이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오랑우탄 우리에는 그런 설명이 붙어있다.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이 보여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다. 털을 깎아내고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를 입혀보라. 그럼 우리 한 구석에서 코를 긁고 있는 저 오랑우탄은 영락없이 내 사촌이다.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 – 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 –의 복잡한 표현일 뿐이라고 보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이러다 레전트 파크 동물원의 1년 자유입장권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인생을 살면서 어렴풋이 느끼는 점들을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자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을 더 이상 발견할 게 없으니 동물원에 가 보면 오히려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섬세한 글이다.

 

동물원을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일반적인 놀이동산이다. 하지만 이처럼 혼자서 동물원을 방문하게 되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던 모든 관점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혹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던 동물들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내 경험처럼 나 외 다른 사람이 아무도 우리 앞에 없다면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를 얻어 낼 수도 있다.

 

동물원에 혼자 가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이는 동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무언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동물들에게서 인간을 발견하고 인간에게서 동물을 발견하는 그 깨달음은 자칫 가슴 아린 경험이다. 혹은 지금의 발상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도 있다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쉽지 않은 도전이겠으나 창조적 단절을 위해 한 번쯤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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